2011년 9월 19일 월요일

에식스 호의 비극과 『백경』 : 실제와 허구의 틈 메우기

『백경』은 멜빌이 자신의 고래잡이 승선체험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허구로 꾸며낸 이야기일까? 『백경』을 꼼꼼하게 읽은 독자라면 멜빌이 이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제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낼 수 있을 것이다. 멜빌은 『백경』 제45장에서 1807년 낸터킷 선적 유니언(Union) 호의 난파사건, 1820년 낸터킷 선적의 에식스(Essex) 호의 난파 사건, 1830년 경 미국 전함의 고래 충돌 사건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유니온 호의 난파 사건에 대해서는 믿을 만한 기록을 찾아볼 수 없었고, 미국 전함은 말향고래와 세게 부딪혀 침수되었으나 가까스로 항구로 입항하여 수리를 마쳐서 『백경』의 소재로 쓰기에는 다소 미약했다. 결국 멜빌은 "요즈음도 폴라드 선장이 낸터킷에서 살고 있고, 조난당한 에식스 호의 1항사였던 오언 체이스(Owen Chase)도 만난 일도 있고 그의 진솔한 기록도 읽은 적이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소설 『백경』과 그 소재인 에식스 호 난파 사건을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에식스 호의 난파 사고에 대한 자료로는 생존자들의 진술과 몇몇 연구자들의 연구서가 있다. 사건 직후인 1821년 1항사였던 오언 체이스의 회고담이 『고래잡이 배 에식스 호』(The Whaleship Essex)라는 제하로 출판되었고, 1832년에 폴라드(George Pollard) 선장의 회고록이, 그리고 채플(Thomas Chapple)의 진술이 출판되었다. 폴라드 선장과 채플의 진술서는 말 그대로 소략한 진술서에 불과하다. 그밖에 에식스호의 소년 급사로 승선했던 니커슨도 회고록을 남겼으나, 사건 발생한 지 50여년 뒤에 작성된 데다 1984년 낸터킷 역사학회에서 학술연구용 한정 부수를 출판하여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밖에 에식스 호 관련 저술로는 토머스 헤퍼넌의 『고래한데 박살이 났다: 오웬 체이스와 에식스 호 이야기』(1981)와 헨리 카라일의 소설 『요나 맨』, 해양사학자인 필브릭의 『바다 한 가운데서 : 고래잡이 배 에식스 호의 비극』이 있다. 이 가운데 필브릭의 저서는 관련자들의 회고록과 최근까지의 연구서를 종합하여 에식스 호 난파사건을 재구성해 내었다. 그같은 성과를 인정받아 『바다 한 가운데서』는 타임즈(Times)가 선정한 2000년 논픽션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고, 미국도서상(National Book Awards)도 받았다. 따라서 에식스 호의 난파 사건에 대해서는 필브릭이 재구성한 이야기가 현재까지 가장 권위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건해양연구소(Egan Institute of Maritime Studies)의 소장이자, 요트맨이자, 전문 해양사학자인 필브릭은 "에식스 호 사건은 멜빌의 <백경>의 마지막 부분에 영감을 준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제공했다"고 밝히면서, 고래의 생태학, 인간의 본성, 극한 상황에서의 인간의 육체적, 심리적인 갈등과 그에 대한 인간의 반응 등을 치밀하게 재구성해 내고 있다.

필브릭의 『바다 한 가운데서』는 태평양으로 고래잡이를 나선 낸터킷의 고래잡이 배 에식스 호가 고래에게 들이 받쳐 난파한 이후 보트에 나누어 탄 선원들이 바다에서 겪은 처참한 생존기록이다. 1819년 8월 에식스 호는 조지 폴라드 선장의 지휘아래 총 22명이 승선하여 태평양과 대서양으로 고래잡이를 나선 238톤급 고래잡이 배였다. 1819년 8월 12일 낸터킷을 출항한 에식스 호는 대서양의 케이프 베르데 제도를 거쳐 아르헨티나 남단의 케이프 혼을 돌아 1820년 봄에는 페루 앞바다에서 고래를 잡기 시작하여 1820년 11월 중순에는 태평양상의 서경 120도, 0도 선상에서 고래를 쫓고 있었다. 1820년 11월 20일 고래를 쫓던 에식스 호는 분격한 향유고래의 공격을 받아 침몰하고 만다.

모선을 잃은 선원들은 작은 보트 세 척에 나누어 탔고, 각 보트는 조지 폴라드 선장, 체이스 1항사, 조이 2항사가 각각 지휘하였다. 가장 가까운 육지는 서쪽으로 3200km나 떨어진 폴리네시아의 마키저스 제도였다. 그러나 그곳까지 가기에는 식량이 부족하여 캘리포니아로 돌아가는 다른 고래잡이 배를 만나기를 기대하고 적도 북쪽으로 항해하기로 하였다. 보트 3 척에는 건빵 90kg과 식수 245리터뿐이었다. 그러나 곧 식량이 바닥이 나자, 바다거북을 사냥하여 일부 식량을 조달하기도 하였으나, 그것마저도 동이 나고, 선원들은 기력을 잃어 갔다. 게다가 폭풍이 몰아닥쳤고, 폭풍이 자고 나자 이번에는 적도 무풍대에 들어서서 보트는 꼼짝달싹 하지 않았다. 결국 노를 저어 무풍대를 벗어났으나, 식량이 떨어진 데다 무리하게 힘을 쏟아 부은 바람에 탈진하였다. 다행히 3 척은 태평양의 핸더슨 섬에 표착하였다. 그러나 핸더슨 섬은 식수원이 없었다. 결국 이 섬에 남기를 원하는 선원 3명을 남겨 놓고 다시 육지를 찾아 나섰다.

태평양을 표류하는 동안 두 번째 보트를 지휘했던 조이 2항사가 사망하여 이제 보트는 폴라드 선장, 체이스 1항사, 헨드릭스 키잡이가 지휘하게 되었다. 1820년 1월 14일에 헨드릭스가 지휘하는 보트에서 식량이 바닥나자 폴라드 선장은 식량을 일부 나누어주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내 바닥이 났고, 헨드릭스 보트에 타고 있던 흑인 토머스가 죽었다. 헨드릭스의 보트에는 이제 450g 밖에 식량이 남아 있지 않았다. 토머스의 시체를 수장하는 것이 관례였으나, 그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결국 토론 끝에 토머스의 시체를 먹기로 결정하였다. 이어 1월 23일 헨드릭스의 보트에 타고 있던 흑인 찰스 쇼터가 죽자, 토머스와 똑같은 운명에 처했다. 폴라드의 보트와 체이스의 보트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상황은 극한으로 가서 이제는 사람을 식용으로 쓰지 않으면 안될 지경에 처하였다. 열 여섯 살의 램스델이 제비뽑기로 죽을 사람을 정하자고 제안하였으나, 모두 주저하고 있을 때 이 제안을 적극적으로 찬성한 코핀이 제비를 뽑아 선원들의 식량이 되었다. 1820년 1월 29일 핸드릭스가 지휘하는 보트가 폴라드와 체이스가 지휘하는 보트에서 이탈했다.

에식스 호가 침몰한 지 89일째에 체이스 1항사가 이끄는 보트는 칠레 연안의 마사푸에라 섬 인근에서 인디언 호에게 구조되었다. 구조된 사람은 체이스 1항사와 키잡이 로렌스, 급사 니커슨 세 명뿐이었다. 체이스 일행은 4000km를 항해해 왔던 것이다. 체이스 1항사가 인디언 호에 구조될 당시 남쪽 480km 해상에서 칠레를 향해 표류하고 있었던 폴라드 선장의 보트도 1821년 2월 23일 칠레의 상 마리(St. Mary) 섬에 도착하였다. 당시 폴라드의 보트에는 폴라드 자신과 램스델 만이 생존해 있었다. 핸더슨 섬에 남았던 세스 위크스와 윌리엄 라이트, 토머스 채플은 1820년 4월 9일 서리(Surry) 호에 구조되어 모두 생존하였다. 헨드릭스의 보트에 탄 선원의 행방이 묘연했다. 1825년 영국 해군의 프레데릭 윌리엄 비치 대령은 핸더슨 섬 동쪽 두시(Ducie) 섬에서 보트 한 척과 유골 네 구를 발견했다. 비치 대령은 이것이 에식스 호의 3번 보트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에식스 호 난파기와 멜빌의 『백경』을 비교해 보면, 백경은 에식스 호 난파기의 앞 이야기에 해당한다. 멜빌이 자필 수고에서 쓴 것처럼, 그는 1841년 아쿠쉬네트(Acushnet) 호에 승선하고 있을 때 선원들로부터 에식스 호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당시 아쿠쉬네트에 타고 있던 체이스의 아들로부터 오원 체이스의 회고록을 빌려 읽은 적도 있었다. 멜빌은 에식스 호 난파기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음에 틀림없고, 1846년 처녀작 『타이피』를 발표하여 창작생활에 전업하면서 에식스 호 난파담은 그에게 훌륭한 이야기 소재가 되었다. 그러나 멜빌이 만약 에식스 호의 난파 이후의 이야기를 소설화했다면, 이는 실패했을 것임에 분명하다. 널리 알려진 에식스 호의 이야기라는 것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독자들이 금새 간파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염두에 두어야 했던 멜빌은 소설 『백경』을 백경을 쫓는 에이햅 선장의 집념과 난파하기까지의 과정을 고래에 대한 박물지와 함께 곁들여 형상화시킴으로써 에식스 호 난파기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창조하였다. 그로써 출간 당시에는 "등장인물들이 중간에 아무 설명도 없이 사라지거나 서술체의 시점이 자주 바뀌는 등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지치게 만들어 빛을 보지 못했지만, 어느 분야에도 속하지 않는 작품으로서 최고의 소설 문학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대륙 문학의 아류로서 영국 문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미국 문학은 멜빌에 의해 비로소 새로운 형식을 확립하게 되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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