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경>은 허먼 멜빌이 1851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고래에게 다리를 잃은 에이햅 선장이 이 고래를 추적하면서 겪게 되는 갈등과 파국을 그리고 있다. 멜빌은 고래에 대한 상세한 박물지와 이슈마엘이라는 화자가 중심인물이 되어 에이햅 선장이 백경을 추적해 가는 과정을 생생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결국 에이햅 선장을 비롯하여 모든 선원들은 죽고, 이슈마엘만이 살아남아 그 이야기를 들려준다. <백경>은 멜빌의 선상 경험이 잘 투영된 작품이다. 멜빌은 고래잡이 배 아퀴쉬네트(Acushnet) 호와 뉴욕-리버풀 간 정기 화객선, 그리고 미국 군함 유나이티드 스테이츠(United States) 호에 선원으로 승선한 경험이 있었다. 그는 이와 같은 승선 경험을 <타이피(Typee)>, <백경>, <레드번(Redburn)> 등의 문학작품으로 형상화시켰다. 그러나 멜빌의 해양소설은 단순한 승선 경험담에 그치지 않았다.
멜빌은 해양에서의 경험담을 인간의 보편적인 주제로 승화시키는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멜빌이 <백경>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것도 단순한 고래잡이 모험담이 아니라 선과 악의 대립이었다. 백경의 큰 주제가 선과 악의 대립이라는 점은 등장인물의 이름에서도 감지할 수 있다.
에이햅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아합(Ahab)에서 따왔고, 이슈마엘에게 불길한 예언을 하는 예언자 일라이자는 선지자 엘리야(Elijah)에서 따왔다. 흥미로운 것은 성서에는 에이햅이 배교자로, 엘리야는 선지자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성서에서 아합은 사마리아를 수도로 하는 이스라엘의 왕 오므리(Omri)의 아들로서 22년간 통치하는 동안 시돈 왕 에드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하였을 뿐만 아니라 바알을 숭배하기까지 하여 야훼의 뜻을 거슬렸다(열왕기상 16:29-34). 이에 대해 선지자 엘리야는 길리앗의 티스베 사람으로 아합의 죄를 꾸짓고 자신이 입을 열기 전에는 몇 해 동안 가뭄이 들 것이라고 예언한다(열왕기 상 17:1).
그러나 멜빌이 <백경>에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선과 악의 단순한 대립이 아니라 선과 악의 상호 공존 내지는 상호 치환성이었다. 얼핏 보면 백경에 대한 복수에 집착하는 에이햅이 악이고, 백경이 선인 듯이 보이지만, 달리 보면 에이햅이 선이고, 백경이 악일 수도 있다.
에이햅에게 백경은 정복해야만 하는, 그러나 결코 정복되지 않는 거대한 바다의 악마일 따름이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에이햅 선장은 거대한 자연에 도전하는 무모한 인간을 상징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렇듯 선과 악은 서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선이 악일 수도 있고, 반대로 악이 선일 수도 있다. 따라서 <백경>에서 에이햅 선장은 “모든 것은 뒤집어 놓고 보면 어쩌면 그렇게 똑같아진다”고 얘기했던 것이다.
결국 멜빌은 <백경>에서 해양이라는 특수한 소재를 문학의 보편적 주제인 인간의 본성과 신에 대한 철학적 탐구를 추구했던 것이다. 멜빌은 이러한 업적으로 당시까지 영국 문학의 아류에 지나지 않았던 미국 문학을 독립시켰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백경>은 고래에 대한 상세한 박물지와 함께 이슈마엘의 회상기로 이루어져 있는데, 일반 독자들이 완독하기에는 참을성이 요구되는 작품이다. 그런 독자들에게는 존 휴스턴 감독이 영화로 만든 그레고리 펙이 에이햅 선장역을 맡은 영화 <모비딕>을 보기를 권한다.
현재 이 영화는 DVD로 출시되어 비교적 싼 값에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다. [김성준 지음, 『해양교재(해양문화/관광 편)』(한국해양수산개발원, 2011)에서 따옴] ⓒ June KIM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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